故 이기영을 추모하며 -이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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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충빈 작성일18-07-05 07:11 조회1,253회 댓글4건첨부파일
- 이기영을 추모하며.docx (23.0K) 4회 다운로드 DATE : 2018-07-05 07: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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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랑스런 벗, 이강욱 박사께서 '故 이기영을 추모하며' 미국동부지역모임의 '카톡방'에 게재한 글이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고 있어 함께 공감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곳에 옮깁니다.
몇몇 在美동기들의 요청이 있었고, 이박사께 裁可도 받았음을 알려 드립니다.
쓰신 분의 감동을 생생하게 옮기기 위해 原文(MS Word)파일을 그대로 첨부하였으나, 그 글을 이 밑에다가도 복사하여 옮깁니다.
"옮김"
오늘 7월 4일은 미동북부 동기들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 많은 날입니다. 1991년 경부터 이 날 가족 동반으로 만나곤 하였습니다. 어제 “그를 보내며”를 써놓았다가 오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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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보내며
미동부 시간으로 2018년 6월 30일 오전 11시 30분경
흰색, 핑크색, 빨간색 장미 중에서 나는 빨간 장미를 하나 집었다.
그의 관을 내려다 보며 그 위에 살며시 던졌다.
잘 가라 친구여!
고통 없는 저 세상에서 편히 쉬며 기다려라.
작년 2017년 10월 같이 골프칠 때 힘차게 스윙하는 것을 보며
아프다더니 거의 완쾌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슨 병이었냐고 묻지 않았다.
나으면 되니까.
그 해 12월 중순 동기 모임 있던 날 왜 참석 안했냐고 영철 회장에게 물었더니
사업차 라스베가스에 간다고 해서 이제는 완전 회복되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금년 5월 초 창훈이 카톡을 보고서야 몹쓸 병으로 몇 년간 투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5월 중순 여러 동기들과 함께 지중해 크루즈 떠나기 전에 만나보고 싶어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냈는데 답장이 없었다.
창훈에게 전화했더니 친구들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가족의 입장에서 병으로 고생하는 모습, 야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해되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편지를 쓰기로 하였다.
전자 우편이 아닌 전통적 우편으로 그에게 편지를…
나는 30년전 1988년 1월 뉴욕 근교로 이사왔다.
지난 30년 이상 미주 동북부 22회 동기들이 자주 만나며 즐겁고 화목하게 지내오고 있다.
1991년인가 그가 NJ Alpine으로 이사간 후에는 오랜 기간 동안 년말 파티는 그의 집에서 하였다.
이사 가기 전에도 롱아일랜드 그의 집에서 파티한 기억도 있다.
한국이나 미국 다른 지역에서 동기생이 오면 또 그의 집에서 모였을 때가 많았다.
내가 좋아하던 갈비, 회, 고급 양주 등 싫컷 먹고 마시고.. 포커도 가끔 하였다.
심지어 나의 용돈이 늘곤 하였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파티 때 한 종류의 양주를 여러 병 갖다놓고 마시는 데 맛이 톡특하고 좋았다.
그 양주 병들 다 비우고 나서 조니워커 블루가 나오길래 비싼 술이네 하였더니 용길인가 광현인가가 조용히
“지금까지 먹던 술이 더 비싼거야”하였다.
Ballentine 30이란 술을 처음 보았고 처음 마신 것이었다.
이름도 모르고 즐긴 것이었다.
또 그의 부인이 준비한 푸짐한 음식을 즐기곤 하였다.
나의 부부는 물론 우리 아이들 둘도 그가 선물로 주었던 shirts, jacket 등을 오래 입었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그런 기억과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의 집에서 있었던 1993년 크리스마스 파티는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아있다.
규형, 창수, 삼표, 강진이가 동시에 뉴욕에 있었고 그들 대부분 파티에 참석하였다.
물론 기욱이, Mrs홍갑선도 그 파티에 참석하였다.
그 파티를 캠코더로 촬영한 기록이 남아있다.
1993년 12월 26일이었다.
그 때 갑상, 균욱은 물론 성균이도 버지니아에서 왔다.
그가 말하기를 “여기에 1등, 2등, 3등이 모두 모였다. 1,2 등은 창수하고 규형이가 다투고 3등은 나였다.”
유머가 많은 친구였다.
1992년 7월 4일과 1993년 7월 4일에 몇 명이 캠코더로 비데오를 찍었다.
그 것들과 1993년 년말 파티에서 찍은 것을 합하여 두 개의 VHS tape을 만들었다.
첫 번째 tape의 ending 곡이 양희은의 “나의 친구”였다.
“지평선 저 멀리 --- 수많은 시간이 흘러 가버렸어도
그날의 그일들은 내 맘 속에 있네
나의 갈길 떠나도
어디 간들 잊으리
나의 친구여 ---"
우리 곁을 떠나간 기영, 강진, 기욱, Mrs홍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하는 장면도 있다.
놀라운 것은 부인들이 모두들 젊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린 소녀같이 수줍어하였다.
1994년 재미과기협 뉴욕메트로 지부에서 뉴욕 동포들을 위하여 수학과학경시대회를 준비하여 개최하였는데 내가 첫 대회장을 맡았었다.
교포들의 후원금으로 그 대회를 준비하고 장학금도 수여하였다.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더니 내가 원하는 금액을 후원하겠다고 하였다.
몇 주 후 더 필요하다고 하였더니 더 도와 주었다.
그의 도움없이는 그 대회를 시작하기도 힘들었었다.
그 대회가 자리 잡기까지 여러 해 그가 성의껏 도와주었다.
그러니까 그가 뉴욕 동포들에게 여러 해 동안 도움을 준 것이었다.
그는 서울고 동창회 일을 아주 잘 하려는 열정이 있었다.
그가 서울고 뉴욕 총 동창회장일 때 년말 파티에 가수 김세환을 초청하였고
선물도 많이 후원 받아왔다.
김세환이 노래만 부르는게 아니라 raffle 추첨까지 하여야했다.
raffle타는 것 보다 노래를 더 듣고 싶은 나는 오히려 아쉽기까지 했다.
2011년 미주 전체 총동창회장 때에는 ferry 타고 맨하탄 돌며 저녁 파티를 하였는데 사람이 많아 대 성황인 것은 좋았는데 너무 많아 BS 같은 친구는 마음놓고 dance를 즐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차고 넘치게 준비하였다.
그런 그의 열성 덕택에 나는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이런 저런 추억을 더듬으며 편지를 쓰다보니 두 번째 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고 마지막 인사말을 쓸 때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이 것이 의식있는 그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일 것이란 느낌이 가슴을 메어오게 하였다.
‘덕택에 행복하였다’ ‘너를 사랑하였다’는 과거형을 쓸 수는 없었다.
그를 친구로 믿고 신뢰하였고 그를 친구로 사랑하였다.
그를 친구로 둘 수 있었었던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고 영광이었다.
그는 1952년 정월 대보름 날 태어나 대보름 달 같은 66년 인생을 살았다.
싱싱한 붉은 장미와 대보름달이 그의 삶에 어울리지 않았나 싶다.
이제 높은 곳에서 우리들을 보살펴주라.
“--- 나의 친구여
다시 만날 그 날까지
잘있으오 잘가오.”
댓글목록
박규열님의 댓글
박규열 작성일
오랫만에 들어왔다가 정말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구나.
나도 기영이 하고는 추억이 많은 사람인데 그동안 서로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가 이런 비보를 접하게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고교때 한동네에 살면서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같이 등교했고, 오래 전에 뉴저지 프린스턴에 출장 갔을 때 주말에 기영이 집에서 모두들 모여서 놀고 강진이와 같이 골프하고 그랬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규도님의 댓글
이규도 작성일
이강욱 ~ 잘 있제이~~~
글 잘 읽었고, 글 써주어 고맙다!
와~ 이리 나보다 젊은 넘~들이 나보다 먼저 가는감?
앞으로 너그들 아프거나 내보다 먼저 이런 소식 전해주면 아니되옵나이다 ... 알찌!
이기영이 그냥 보낼 수 없어 나도 졸글(拙筆)이나마 사랑방에 올리요!
<사족>
맨밑사진...홍갑선,추광현...오른쪽 최응상 아이가?
이강욱님의 댓글
이강욱 작성일
임충빈 총무님 글과 사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설명:
(1) 1991년 고 이기영 NJ Alpine집에서. 왼쪽부터 동기들만 김헌, 김용남, 홍창훈, 천병수, 고 이강진, 김지혁, 배진건, 이용길, 이강욱, ??, 고 이기영 (바닥에 앉아 있음).
(2) 1993년 Pocono에서. 왼쪽부터 동기들만 박영섭, 김지혁, 김희건, 김용남, 고 김기욱, 이용길. 맨 앞쪽 중앙 초록 셔츠/흰 바지 입은 분이 고 Mrs 홍갑선.
(3) 1990년 6월 피크닉 가족 사진 – 28년 전입니다.
(4) 1990년 6월 피크닉: 뒷줄 왼쪽부터 이강욱, 이필중, 엄춘택, 이용길, 배진건, 김지혁, 고 이기영. 앞쪽 왼쪽부터 김헌, 우갑상, 박노억, 홍갑선, 추광현, 최응상 (이규도 지적으로 추광현 한테 확인 후 정정).
Hong Chang Hoon님의 댓글
Hong Chang Hoon 작성일
먼저 떠나간 친구 회상하며 쓴 감동적인 글을 접하니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하늘에 있는 기영이도 매우 반갑고 기쁘리라 생각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