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09-북한산 종주(신년맞이 특별산행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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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영 작성일22-01-13 14:45 조회45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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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0913 지하철 북한산 우이역 출발
0932 신검사, 용덕사 이정표 삼거리
0943 용덕사
1014 육모정고개 삼거리
1052 전망대
1102 영봉(604m)
1125 하루재
1135 인수암
1156 백운산장
1212 백운봉 암문(위문, 721m)
1237 노적봉(718m) 아래 도착
1252 용암문
1258 북한산 대피소, 점심
1330 대피소 출발
1354 대동문
1409 보국문
1434 대성문
1441 대남문
1458 청수동 암문
1515 문수봉(727m) 우회
1532 승가봉(567m)
1549 사모봉(542m)
1607 향로봉(535m) 우회
1642 족두리봉(370m) 전망대
1709 정진공원지킴터 갈림길
1717 북한산둘레길 사거리
1720 불광사 위쪽 시산제 공터 통과
1724 북한산둘레길 입구 도착
1730 식당 도착
1915 식사 종료
[활동]
8시간 17분, 15.7km, 31,000보
[참가자]
김시영, 김용수, 송경헌, 양승찬, 우갑상, 이용남, 최택상, 홍기창,
[낙수]
산행을 함으로써 코비드19 즉 “무한폐렴”을 극복한다는 약간의 농담이 섞인 명분을 내세워 2020년 2월 29일 친구 두 명과 세곡사거리~인능산~구룡산~대모산~수서역에 이르는 소위 “극무산행”을 시작한 지 2년이 되어 간다. 그동안 짧게는 5시간, 길게는 10시간이 소요된 등산만 31회를 기록하였다. 임인년을 맞아 1월 2일 남한산성 성곽길 일주로 신년맞이 산행을 하였지만 이 산행을 극무산행에 포함시키기에는 등산 시간이나 거리 및 난이도 등에서 다소 미흡하였다. 그래서 신년 첫 극무산행은 북한산 종주산행으로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소요시간 7시간 30분 이상, 도상 거리 16km에 이르는 쉽지 아니한 겨울 북한산 종주산행을 제의하자 놀랍게도 나이가 이미 70을 넘은 친구들이 7명이나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북한산은 조선 왕조의 도읍인 한양의 북쪽을 진위하는 산인 만큼 이미 그 위치나 형세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북한산을 큰 줄기로 보면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좌측인 북쪽으로는 인수봉, 영봉, 우이암, 도봉 주봉, 자운봉을 거쳐 사패산으로, 우측인 남쪽으로는 만경대, 문수봉, 승가봉, 비봉을 지나 북악산으로 각각 이어진다. 또한 그 봉우리로 연결되는 많은 능선과 능선 사이마다 크고 작은 계곡을 품고 있어서 봉우리나 계곡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다운 북한산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북한산은 어느 계절에 어느 산길을 선택하더라도 찾는 사람을 실망하게 하는 법이 없다. 그 무수한 산길 중에서도 북한산 열두성문을 이어가는 원형산행과 우이동 육모정에서 출발하여 불광동에 이르는 종주산행은 그 상징성은 물론이고 풍광이나 난이도 등을 종합해 볼 때, 북한산 등산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임인년 첫 극무산행지로 북한산 종주산행을 선택한 것은 북한산이 가진 위와 같은 위상과 함께 그 초월성과 불멸성에 의지하여 무한폐렴이 금년에는 반드시 종식되기를 빌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소한이 1월 5일이었으니 섣달에 들어선 이즈음이 연중 가장 추운 때다. 그러나 1월 9일 북한산의 기온은 영하 5도(오전 9시)에서 영하 2도(오후 2시) 정도이고 바람도 잔잔하며 대체로 맑고 오후에 구름 조금이지만 미세먼지의 농도가 매우 나쁜 상태라고 예보되었다. 이 정도라면 겨울 산행을 하기에 매우 따뜻하고 좋은 날씨라고 할 수 있다. 2020년 4월 4일 같은 루트로 북한산을 종주한 지 거의 1년 9개월 만인 2022년 1월 9일 아침 9시 13분경에 다시 지하철 북한산 우이역을 출발하였다. 우이령 옛길을 따라 한 20분 올라가면 좌측으로 신검사와 용덕사로 간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오늘의 산행 들머리가 되는 지점이다. 용덕사 입구까지 올라가서 두꺼운 상의를 벗고 본격적으로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오늘은 장거리 산행을 해야 하므로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꾸준하게 걷고자 다짐하면서.
우이역을 출발한 지 한 시간 만에 오늘 산행의 첫 번째 목표지점인 육모정고개에 이르렀다. 지도를 살펴보면 경기도의 고양시와 의정부시의 경계에 위치한 솔고개에서 시작하는 북한산의 북쪽 끝줄기인 상장능선은 왕관봉을 지나 육모정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북한산 종주 루트는 솔고개에서 시작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고, 용덕사를 출발지로 잡아 육모정으로 오르는 길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옆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수년 전부터 상장능선의 산행이 금지되고 있고, 상장능선에서 좌측으로 틀어 우이령을 가로질러 도봉주능선의 우이암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 역시 오래전부터 군사적인 이유에서 통행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다. 그래서 애석하지만 도봉산과 북한산을 능선으로 연결하는 산행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육모정고개를 북한산 종주산행의 시점 또는 종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 뒤쪽의 북악산길이 열리듯 육모정고개에서 도봉주능선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열릴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육모정고개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북한산 우이능선에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미세먼지와 안개가 뒤섞여서 시계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새벽에 내린 싸락눈이 미끄러지기에 딱 좋을 정도로 낙엽 위나 바위 또는 돌계단을 허옇게 덮고 있었다. 미끄러운 곳을 피하면서 조심스럽게 옮기는 발걸음은 수시로 꼬이고 더디어진다. 이런 경우에는 두 발만으로 직립보행하는 인간의 걸음이 네 발 짐승의 그것보다 불리한 것같이 느껴진다. 쌍스틱을 사용하여 일시적으로 네 발 짐승의 흉내를 내보지만 급경사에서는 스틱이 도리어 짐이 되고 두 손을 쓰는 편이 오히려 편하다. 걷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를 두 손에 들었다 하더라도 손이 앞발처럼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등산화의 밑창만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외국의 유명회사의 제품의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바위에 얼어붙은 눈 위에서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조심하는 마음과 눈 산행의 경험만이 안전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이 된다.
미끄럽고 다소 위험한 암릉 구간을 두어 차례 통과하여 1시간 50분 만에 북한산 북쪽 끝자락에 있는 604m의 영봉에 도착하였다. 영봉에 올라서면 북한산 인수봉을 바로 눈앞에 둔 채 그 뒤로 백운대와 만경대가 짙은 음영을 이루어 중첩되고, 우측으로는 원효봉능선이, 좌측 뒤쪽으로는 산성능선이 숨바꼭질하듯이 아득히 이어지는 장엄한 북한산의 웅자를 경외의 시선으로 우러러보면서, 자연이 주는 깊은 감동에 영혼까지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이날의 북한산은 잔설이 희끗희끗 덮여 있는 회색빛의 화강암 봉우리와 골짜기를 덮은 검푸른 소나무 군락이 절묘하게 어우러져서, 마치 여린 겨울 햇살 아래에서 엷은 안개로 자신을 반쯤 가린 채 고요한 명상 속에 웅크리고 있는 거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였다. 영봉이라는 이름은 또한 인수봉을 오르다가 불귀의 객이 된 산악인의 영혼이 늘 인수봉을 바라볼 수 있는 안식처라는 의미에서 1980년대부터 불리게 되었다고 하니 거기에는 비장함 마저 배어 있다. 우리나라의 산봉우리들의 이름은 불교와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고 그 외에는 동물 등의 형상이나 역사적 사건에서 유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봉은 그곳에서 인수봉을 바라보았을 때 받는 느낌과 함께 산을 오르다가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삶에 대한 상상까지 일깨우는 작명이라는 면에서 좋은 이름이다.
영봉을 내려오면 하루재이고 그 맞은편은 만경대로 이어지지만 폐쇄되어 있다. 하루재는 고양시 효자동에서 서울의 우이동 골짜기로 넘나드는 T자형 삼거리 고갯길로서 육모정고개에서 시작한 우이능선이 끝나는 지점이자 북한산 동쪽의 능선길 상의 요지이다. 하루재에서 우측 방향으로 접어들어 만경대 기슭을 끼고 인수봉 좌측으로 나 있는 가파른 깔딱고개를 올라가면 백운봉암문(위문)에 이른다. 깔딱고개란 숨이 목까지 차서 힘들게 올라가는 비교적 길고 가파른 산의 경사지대를 두루 칭하는 일반명사로 사용된다. 그러나 “깔딱”이라는 묘사가 풍기는 이미지 때문에 썩 품위있는 작명 같지는 않다. 하루재에서 인수대피소와 백운대피소를 통과하여 백운봉암문까지의 거리는 약 1.1km에 불과하지만 통과 시간은 50분 가까이 소요된다. 성인 남자의 산길에서의 평균시속을 2~3km라고 볼 때, 깔딱고개를 오르는 산길의 난이도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인수봉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파르게 올려 볼 수 있는 곳이 깔딱고개에 있는 인수암 부근이다. 인수대피소와 백운대피소 등 공식적인 건물 외에 깔딱고개에 남아 있는 건물은 인수암이 유일하다. 국립공원 안에 문화재가 아닌 개인 사찰이 철거되지 않은 채 존치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인수암은 사유지 내에 있는 합법적인 건물인 모양이다. 암자의 입구 우측의 석재 지주에는 “相中無佛 佛中無相”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금강경에서 유래한 구절인 듯하다. 굳이 저 글귀를 비판하자면, 相(오감이 지은 부처의 겉모습, 諸相)과 佛(부처의 진면목, 非相)은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당연한 말을 공연히 지어낸 것이다. 인수봉의 발치에 2개의 대피소가 있다는 것은 인수봉을 오르다가 조난사고가 많이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취미생활이 가진 위험성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래서 암벽등산을 즐기는 Y선생한테 위험한 암벽등산을 왜 계속하느냐고 묻는다는 것은, 나에게 동절기에 위험한 눈산행을 왜 하느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로 별 의미가 없다. 과거의 인수봉의 잦은 조난사고에 대한 개인적인 상념이다.
우이역을 출발한 지 3시간 만인 12시 12분경에 해발 721m인 백운봉암문을 통과하자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나뭇가지마다 상고대가 그림 같이 맺혀있는 것이 아닌가! 영하의 기온에 북한산성능선 방향으로 몰려온 찬 안개가 밤새껏 능선의 동남쪽에 있는 나뭇가지에 서리로 맺혀서 상고대를 형성한 것으로 짐작한다. 한 시간 전쯤에 영봉에서 바라보았을 때까지도 백운대와 만경대는 엷은 안개에 감싸져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물은 나뭇잎에 이슬로 맺히기도 하고, 언 서리가 되어 나뭇가지를 상고대로 감싸기도 하니, 구름, 안개, 이슬, 서리, 눈, 얼음 등으로 변신하는 물의 자유자재함은 참으로 놀랍다. 가장 뛰어난(통달한)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는 말은 고정되지 않고 걸림이 없는 물의 이러한 특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미적 감각을 높이기 위한 훈련과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관찰력이 필요하다. 자연이 선사하는 우연한 아름다움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 우연의 현장까지 찾아 나서는 노력까지 더해야 한다. 자연을 찾는 등산은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경사도를 높인 헬스클럽의 러닝머신이 등산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고대는 백운봉암문에서 노적봉을 거쳐 용암봉 아래에 이르도록 맺혀있었다. 그러나 마른 나뭇잎을 감싸고 있던 상고대는 눈으로 보는 순간에도 햇살을 받아 미세한 이슬방울로 녹아 사라지고 있었다. 그 덧없는 소멸에서는 아름다움조차 비애를 불러온다. 만약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타임 랩스(Time Lapse)로 촬영한다면 그 모습은 햇살 아래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상고대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모든 존재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찰나에 불과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결단에 달려있다.
다소 시장기를 느껴가면서 노적봉과 용암봉 아래의 바위투성이의 험한 길을 헤치고 지나가기를 3~40분 정도 경과하여 1시에 가까워서야 점심 먹을 장소인 북한산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대피소 건물이나 그 주변은 널찍하여 식사나 휴식을 하기가 편함에도 불구하고 늘 한산한 편이다. 아마도 북한산을 찾는 등산객은 식사 장소로 대피소보다는 성문 주변이나 전망이 좋은 곳을 선호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산행 중의 식사로 말하자면, 등산에 중점을 두는 산꾼들은 식사 시간이 짧고 양도 많지 않다. 특히 등산 중의 음주는 기껏해야 서너 잔으로 끝낸다. 그러나 등산을 소풍이나 나들이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친구들과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찾아서 산자락으로 모인다. 둘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오늘 산행 중에서 겨우 절반쯤 온 일행에게 편안한 휴식시간을 늘린다는 것은 앞으로 더욱 고된 발길을 예약하는 것에 불과하다. 30분간의 간단한 식사만으로도 남은 4시간의 등산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섭취한 일행은 서둘러 대피소를 출발한다.
우이동 용덕사 입구에서 불광동 불광사에 이르는 북한산 종주 산행을 소요시간을 기준으로 나누면 북한산 대피소가 거의 중간 지점이다. 그러나 난이도로 말하자면 대피소에서 불광사에 이르는 후반부는 전반부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쉽다. 더욱이 후반의 산길은 전체적으로 하산하는 형세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이미 온 만큼의 시간이 더 소요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남은 산행을 포기하고 지름길로 하산해버린다는 것은 지금까지 어렵게 성취한 산행이 아까워서라도 취할 행동이 아니다. 대피소를 나와 산성능선을 본격적으로 내달아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을 순서대로 구름 흐르듯 스쳐 간다. 일행은 온전히 산성길만 따라가지는 않고 더러는 지름길이 되는 소로를 넘나들기도 한다. 싸락눈의 흔적이 전혀 없는 남향의 산성능선길 옆의 소로는 일행의 등산화가 지나가는 발걸음에 마른 낙엽과 함께 먼지가 날린다. 북한산성의 여러 문을 산행할 때면 이따금 떠오르는 생각이지만, 조선 숙종 37년(1711)에 완공된 북한산성이 과연 군사적으로 한양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는지, 그도 아니라면 적어도 북한산성 내에 건축되었던 행궁이라도 보호하는 기능이 있는지는 참으로 의문이다. 숙종 이후 몇몇 왕들이 나들이 삼아 행궁으로 행차하였다는 기록 외에 북한산성의 행궁은 버려져서 이내 폐허가 되었고,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 북한산이 한양을 보호하는 방어진지의 기능을 담당하였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북쪽의 이민족이 굳이 길도 없는 험준한 도봉산과 북한산을 넘어서 한양으로 침입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란과 호란을 겪은 이후 많은 논란 끝에 북한산성을 축성하게 되었지만, 조선왕조 시대를 통하여 북한산성은 한양 방어라는 기능적인 면에서 남한산성보다 더욱 무의미한 성이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대남문을 거쳐서 청수동 암문으로 향하는 가파른 길을 올라 숨가쁘게 문수봉 아래의 우회길 이정표에 이르면, 행정구역상으로는 아침에 출발한 도봉구에서 강북구와 성북구를 지나 종로구에 들어선 것이 된다. 문수봉을 지나면서부터 비봉능선이 시작되니 앞으로 두 시간 남짓 후면 오늘의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더욱 안도하는 것은 승가봉만 통과하게 되면 오늘의 산행에서 어려운 길은 다 지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승가봉은 그 아래쪽에 있는 사찰인 승가사에서 유래된 명칭일 것이다. 승가사는 승가대사라는 인도 승려를 기리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승가대사는 인도인으로 당나라 고종 때 중국으로 건너 와서 불법을 설하고 열반한 후에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간주되어 존경을 받던 스님이라고 한다. 신라 경덕왕 때인 756년에 우리나라에까지 그 명성이 전해져서 승가사를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승가(僧伽)란 산스크리트어인 상가(samgha)의 음역으로, 교단생활을 하는 화합한 대중 즉 출가자의 집단을 의미하며, 승단(僧團) 또는 회중(會衆)이나 승(僧)도 같은 의미이다. 불교에서 삼보 중의 하나인 승이란 스님 개인이 아니라 승단을 의미한다. 승가봉에서는 북쪽으로 우측의 보현봉과 좌측의 문수봉을, 남쪽으로는 바로 눈 아래의 사모바위와 그 뒤로 비봉, 향로봉, 족두리봉을 조망할 수 있어서 북한산 종주코스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명소 중의 하나이다. 승가봉에서 빼어난 풍광의 북한산 남쪽 줄기를 한 번 더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북한산이 여기까지에 이른 종주자들에게 내려주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 24대 진흥왕이 555년에 북한산을 순행한 것을 기념하여 비석을 세운 비봉 아래를 훌쩍 지나고, 멋진 사모봉의 암릉 구간을 재미있게 통과한 후에, 경사가 급한 산길을 내려 오고나면, 어느새 승가봉에서 내려 보이던 향로봉까지 이미 우회한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제부터는 얼마 남지 않은 산길이 오히려 아깝게 느껴진다. 향로봉 아래의 조망 좋은 암릉에서 바라보니, 조금씩 붉은 빛을 더해가는 겨울 해가 족두리봉 너머에서 저물고, 불광동, 녹번동, 역촌동 등 서울 서쪽의 도심은 미세먼지 속에 회색빛으로 잠겨 있다. 마지막으로 족두리봉으로 올라가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해 지고 난 겨울산은 이내 어두워지고 지친 발걸음은 균형을 잃기 십상이다. 그래서 족두리봉 아래 삼거리에서 직각으로 우회하여 정진공원지킴터 방향으로 마지막 하산길을 잡는 것으로 결정한다. 지하철 독바위역으로 접근하기가 좋고, 연초에 거행할 시산제 자리를 확인하기 위하여 택한 길이다. 갈림길이 적지 아니한 불광동 일대의 북한산 하산길을 한 차례의 착오도 없이 안내할 수 있는 산행 길잡이가 일행 중에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오후 5시 24분에 북한산둘레길 입구에 도착함으로써 8시간 11분이 걸린 북한산 종주를 마쳤다. 성취감과 안도감이 깊게 느껴졌다. 위험과 불안이 사라진 후에 찾아오는 안도감은 행복감의 소극적인 발현이다. 하산 후라야 느낄 수 있는 안도감을 찾아 우리는 앞으로도 길고 험한 산행을 지속할 것이다.
-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