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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우회 게시판

220917-월출산(총산 백두대간 산행 겸 특별산행 15)

페이지 정보

김시영 작성일22-10-03 16:28 조회354회 댓글0건

본문

 

[일정]

0014   압구정동 출발

0445   월출산 도갑사 탐방지원센타 주차장

0455   산행시작

0459   도갑사 일주문

0517   대웅전(등산로 반대방향 템플스테이 쪽으로 7~8분 가량 잘못 진입)

0605   도갑사 2.1km 지점 통과

0613   머리 전구(헤드 랜턴)

0637   미왕재(억새밭, 도갑사 2.7km)

0743   구정봉 아래 삼거리(도갑사 4.2km)

0754   구정봉(710.9m), 아침식사

0813   구정봉 내려옴

0839   베틀굴

0853   바람재 삼거리

0904   괴인암

0914   도갑사 5km 지점

1010   천황봉(809m, 도갑사 5.8km)

1024   천황봉 출발

1032   통천문

1037   산성대 주차장 3.6km (천황봉 300m)

1258   산성대 탐방로 입구

1300   주차장 도착

 

[활동]

9.8km/8시간 5

 

[낙수]

  월출산은 1997323일 관악산을 시작으로 등산에 입문한 지 6일 후인 329일에 친구 5명과 함께 두 번 째 산행지로 등산한 산이자 바로 무박산행까지 경험한 산이라는 점에서 나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 쌀쌀한 초봄의 새벽 5시 경에 도갑사를 출발하여 오후 1시 경에 천황사에 도착할 때까지 고저차가 심하면서 험한 바위투성이의 산길에 힘은 들었지만,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암봉의 수려한 형상을 멀리서 혹은 바로 눈앞에서 접하면서 월출산의 아름다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더욱이 귀경 중의 버스 안에서 바라본 너른 평야 가운데 혼자 우뚝 솟은 해거름 무렵의 어슴푸레한 월출산의 원경은 신령스러운 기운에 감싸인 듯 신비한 모습이었다. 그 후 오랫동안 등산을 하면서 점차 강화되었지만, 당시 내가 처음 본 월출산은 살아있는 가이아의 여러 초월적인 자태 가운데 하나라는 믿음이 싹트게 되었다. 2002. 10.에는 고교 동기 산우회가 주관한 월츨산 12일 등산에 동참하여 천황사~도갑사 코스로 산행을 하면서 출렁다리를 위시한 천황봉의 아름다움 풍광을 다시 기억에서 되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머릿속에 남은 기억이란 마치 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감처럼 시간이 흐름에 따라 번지면서 형상과 색깔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하물며 20년 전에 올랐던 월출산의 기억임에랴!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5권의 전라도 영암군편에 의하면 월출산은 신라시대에는 월나(月奈), 고려시대에는 월생(月生), 조선시대에는 월출(月出)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月奈는 달이 나오는 산이라는 의미인 달나”(?)의 신라시대의 이두식 표기방법인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시대에 이르러서 자 대신에 날 자를 써서 월생산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월출산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된 것은 산봉우리에서 달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표현하는 한자로는 자보다는 자가 더 정확한 것으로 이해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한자라는 외래 문자에 대한 이해의 심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에서 300km 이상 떨어진 한반도 남쪽의 명산은 당일로 다녀오기가 쉽지 않다. 무박산행은 12일이 필요한 산행을 당일로 끝내기 위하여 고안된 산행 방법이다. 매사를 처리하는데 있어서 맹렬한 자세와 빠른 성취를 덕목으로 생각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등산에 나타난 것이 장거리 무박산행이 아닌가 한다.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잠을 잠으로써 1박을 무박으로 없애버리고 하루 만에 등산을 완수하겠다는 것은 건설공기 단축의 귀재인 한국인이 등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창안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출발지인 압구정동 공영주차장에서 월출산 도갑사 주차장까지는 360km 거리에 고속버스로 4시간 30분이 소요되고, 산행 시간은 8시간 이상 필요하기 때문에 월출산을 등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무박산행은 불가피하다. 70이 넘어서까지 무박산행을 한다니까 집사람이 먼저 질색이다. 그러나 집사람의 만류의 힘은 오랫동안 갈구해 온 월출산 등산에 대한 내 욕망보다 강할 수 없다. 더욱이 오랫동안 산행이 금지되던 산성대 코스 중에서 산성대~광암터 삼거리에 이르는 1.5km 구간이 2015. 10. 경에 정비를 마치고 재개통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지 오래되었건만 정작 가보지 못한 채 나이만 더 먹어가니 해마다 안타까움만 더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동문산악회의 백두대간팀이 28인승 버스를 이용한 월출산 무박산행을 공고하고 양승찬 학형까지 동참한다고 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버스에서는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체질 때문에 새벽 2~3시경 사이에 얼핏 가수면 상태에 들었다가 군산휴게소 인근에서 절반쯤 각성하여 새벽 445분에 월출산 국립공원 탐방지원센타 주차장에 도착하도록 비몽사몽간을 헤매고 있었다. 어질어질한 상태에서 헤드 랜턴을 장착하고 평상시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던 스틱까지 준비하여 일행의 맨 후미를 출발하였다. 도갑사 일주문 앞에서 방향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채 우측으로 길을 더듬어 약 5분간 올라가니 템플스테이 증축 공사장이 나타났다. 산행 시초부터 길을 잘못 찾아 든 것이다. 버스 안에서는 잠이 오지 않더니 막상 등산을 시작하자 이내 졸리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헤드 랜턴이 발 앞에서 어른거리는 산길은 그다지 험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앞서가는 일행의 여러 가닥의 랜턴 빛줄기가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이리저리 휘저으면서 오르는 모습이 저만치에서 보인다. 산짐승조차 쉬고 있는 시간에 거친 숨 내뱉으며 깊은 산 속의 캄캄한 길을 더듬어 가는 나의 이 행동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아마도 천황봉을 향해 나아가는 내 자유의지의 발현 자체가 현재의 나의 존재를 표상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고, 돌을 진 채 산을 오르는 시지푸스의 행동의 의미도 이해할 수 있다.

 

  6시가 넘자 랜턴의 불빛은 여명에 바래져서 점점 흐려졌다. 산길은 어느 순간에 데크가 가설된 계단길로 변하였다. 계단의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숲이 조금씩 넓게 열리면서 밝고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빛나고 있었다. 미왕재라고 불리는 억새밭 고갯마루에 이른 것이다. 잔잔한 구릉에 펼쳐진 억새밭 위로 엷은 황금빛의 여명이 고요히 내리고, 멀리 굽이치는 산 능선 아래로는 영암의 마을이 새벽 안개 속에 아득히 가라앉아 있었다. 새벽 산에 오른 자만이 맛볼 수 있는 맑고 깨끗한 대기가 먼지와 땀에 젖은 내 몸을 신선하게 씻어주었다. 갈 길이 먼 야간 산꾼은 환상 같은 산 능선의 풍광을 그저 몇 장의 사진에 담은 채 탐미의 갈증을 다 채우지 못하고 구정봉을 향해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해발 100m인 도갑사에서 710m인 구정봉까지 4.2km는 경사도가 그리 심하지 않는 밋밋한 능선이 이어지므로 평상시의 컨디션이라면 1시간 3~40분이면 여유있게 통과할 수 있는 구간이다. 억새밭을 지나면서 졸음은 더욱 밀려오고 발길은 자꾸 느려진다. 그나마 폐부에는 신선한 아침 공기가 계속해서 공급되고, 발걸음을 옮김에 따라 내 위치가 이동되고 점차 밝아지는 햇살의 각도가 매 순간 달라지면서 그에 따라 능선을 이루는 암봉 역시 그 형태와 색깔이 미묘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마약 같은 각성과 진정의 효과를 발휘하는 듯하였다.

 

  도갑사를 출발한 지 거의 2시간 만에 바윗덩어리를 붙잡고 기어 올라가서 해발 710.9m 구정봉 정상에 몸을 올렸다. 아침 해는 그 새 동쪽 하늘 위로 많이 솟았고 그 좌측 아래쪽으로는 천황봉이 멀지 않은 곳에서 아담한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구정봉 정상에는 크게는 직경이 2m에서 작게는 몇십 cm 정도 되는 구덩이가 십여 곳에 패어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비에 자연히 침식된 것 외에 약간은 인위적으로 구멍과 수로를 파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구정봉(九井峯)은 월출산의 최고봉이다. 꼭대기에는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높이가 두 길이나 되고, 곁에 한 구멍이 있어 겨우 사람 하나가 드나들 만하다. 그 구멍을 따라 꼭대기에 올라가면 20여 명이 앉을 수 있는데, 그 편평한 곳에 오목하여 물이 담겨 있는 동이 같은 곳이 아홉이 있어 구정봉이라 이름 붙인 것이니, 아무리 가물어도 그 물은 마르지 않는다. 속설에 아홉 용이 그곳에 있었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 기록에서 구멍을 따라 꼭대기에 올라간다는 표현은 아마 구정봉에 있는 좁은 바위 틈새를 말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구정봉의 바위는 비교적 평평하여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다는 기록도 정확하다. 그러나 구정봉의 바위에 파진 홈의 깊이는 책을 편찬한 지 490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장 큰 홈이라고 해봐야 그 깊이는 기껏 20cm 남짓하여 우물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아마도 조선 중종 25(1530)에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한 관료들이 직접 산에 올라가서 관찰한 바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영암군수가 천황사나 도갑사의 승려들로부터 전해 들은 과장된 이야기를 편찬자들에게 보고한 내용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구정봉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에 배낭을 베개 삼아 평평한 바위 위에 다리를 뻗고 편히 누웠다. 하늘 가득히 낀 엷은 구름 사이로 가을 아침 햇살은 부드럽게 내리고 바람결은 서늘하며 등에 닿은 바위의 감촉은 불편치 않게 딱딱하면서도 차가웠다. 누운 자세 그대로 눈을 반쯤만 뜨니 우리가 하산헤서 가야 할 산성대 능선의 꼭대기 부분이 시계 맨 아래쪽으로 간신히 보이고 나머지는 구름이 낀 하늘로 가득하였다. 눈을 감으면 그대로 잠들 것 같았다.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존재감마저 흐려지니 이 순간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구정봉에서 내려오면 가까운 곳에 임진왜란 때 인근 마을에서 피난을 온 여인들이 숨어서 베를 짰다는 베틀굴이 있다. 안내판에 의하면, 굴의 형상이 여성의 신체의 일부를 닮았고 건너편에 있는 남근석을 향해 있다고 설명한다. 등산을 해보면 우뚝 솟은 바위 이름은 촛대바위 아니면 남근석이고 움푹 파인 바위틈이나 굴, 혹은 둥글게 솟은 바위에는 여성의 신체의 일부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작명된 경우가 식상할 정도로 전국에 널려 있다. 산에는 주로 성욕이 왕성한 젊은 남자들이 오르니 대상을 보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성적 욕망이 분출된 결과가 작명으로 나타나는 것인가? 여러 지방자치단체는 그것도 부족한지, 경쟁적으로 시민공원을 조성하여 남녀의 은밀한 부위는 물론이고 성행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조각까지 전시하는 예도 흔히 목격된다. 두 경우 모두 천박함과 상상력의 빈곤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구정봉에서 바람재 삼거리를 지나는 구간은 내리막 능선길이다. 구정봉까지 2시간을 올라온 터여서 내리막길이 편하기는 하지만 맞은 편으로 보이는 천황봉이 점점 가파르게 솟아오르는 현실이 걱정을 점점 크게 만들고 있다. 710m인 구정봉에서 거의 100m를 내려간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능선이 시작된다. 천황봉은 해발 809m이므로 200m를 다시 올라가야 한다. 이곳에서는 뒤쪽의 구정봉 능선과 바람재에서 경포대계곡으로 이어지는 능선, 그리고 앞에 있는 천황봉 능선 등이 사방으로 뻗어 있는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능선 위로 돌출한 암봉들을 바라보자니 2007. 7. 25. 등산한 중국 청도의 노산의 암봉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바다에 가까운 평지에 우뚝 솟은 월출산과 노산은 암봉들이 날카롭기보다는 부드럽게 마모된 돌무더기가 모여있는 모습에서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느껴진 것이다. 노산은 산 전체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큰 돌무더기의 산임에 비하면, 월출산은 상대적으로 아담하여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노산이 오랜 세월 동안 황하에 쓸려 내려와서 청도 해변에 퇴적된 돌무더기 산이라고 멋대로 상상하듯이, 혹시 월출산은 영산강에 쓸려 와서 한반도 동남편 끝자락에 모여진 산이 아닐까?

 

  본격적으로 천황봉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경사로에 기이한 모습의 암석이 우뚝 서 있다. 베틀굴 안내판에서 소개하고 있는 남근석이 바로 이것이다. 이 암봉은 천황봉으로 올라가는 상행 방향에서 보면 거북을 닮은 괴수의 형상이고 하행 방향에서 보면 괴인이 반가부좌를 한 형상이다. 그래서 나는 이 암봉에 괴인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암봉의 정수리 부분에는 풀이 돋아 있는데 산철쭉이라는 기록이 인터넷에 보인다. 시들어서 죽어가는지 이를 살리려는 움직임도 있는 모양이다. 괴인암 아래의 바위틈을 통과하면 천황봉까지는 대략 7~800m 남는다. 여기서부터가 오늘의 등산 코스 중 경사도가 가장 높은 난코스이다. 특히 정상 600m 아래에 있는 삼각암에서 천황봉까지 올라가는데 무려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나는 5시간 이상 등산을 하면 가끔 오른쪽 종아리 부위나 오른쪽 가운데 발가락에 쥐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통상적으로는 늘 나던 곳에 잠시 나다가 증세가 사라지곤 한다. 그런데 이날은 다리의 여기저기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지속해서 쥐가 나는 바람에 걸음이 자꾸 더디어졌다.

 

  출발한 지 5시간 15분이 지난 오전 1010분에 천황봉에 올랐다. 도갑사 기점 5.8km인 천황봉에 이르는데 5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전반적으로 경사가 심하지 않은 산길임을 감안한다면 무박 야간산행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위와 같은 소요시간이 잘 말해 준다. 한 때 천황봉이라는 산봉우리 이름은 일본의 천황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오해하고 일제의 잔재이니 사용하지 말자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그러나 윤휴가 17세기 초엽에 저술한 백호전서에 이미 속리산 문장대와 함께 천황봉이라는 이름이 보이고, 1656(효종 7)에 유형원이 편찬한 동국여지지5상 영암군 편에는 이에 구정봉에 오르니 봉우리 정상에는 구룡정이 있고 천황봉이 보인다(仍登九井峯峯頭有九龍井觀天皇峯)”라는 허목의 유산기”(遊山記)의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보면 천황이라는 산봉우리 이름은 일본 천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천제나 옥황상제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천황봉에 서면 남으로는 강진의 앞바다인 남해가, 서로는 목포의 앞바다인 서해와 영산강이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밝은 초가을 햇살의 눈부심과 엷은 연무로 인해서 서쪽과 남쪽 방향 저 멀리 시력이 미치는 끝은 하늘과 땅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구릉과 평야 간의 경계조차 흐릿하였다. 보일 듯 말 듯 상상을 자극하는 아스라한 풍광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천황봉 정상의 표지석은 1984년에 영암군에서 설치한 것으로 月出山 天皇峯 809m”라는 음각은 영암의 서예가가 쓴 글씨라고 한다. 산에서 본 정상 표지석 글씨 중 가장 못 쓴 글씨인 것 같다. 월출산의 자는 더러 두 개를 겹쳐 쓰기도 하지만 이는 속자로서 서예가가 따라서 쓸 것은 못 된다. 자는 땅에서 싹이 돋아나는 모습이나 구덩이에서 발이 빠져나오는 모습을 표현한 상형문자이다. 월출산의 표지석의 자는 달이 산에서 나온다는 뜻에서 의도적으로 뫼 산 자 두 개를 겹쳐 쓴 것으로 짐작은 가지만, 잘 쓰기라도 했다면 굳이 지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天皇峯자는 자와 같은 글자이다.

 

  졸음이 쏟아지는 중에 휴식을 취한 다음 하산할 산성대 능선을 내려다보니,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이어지고 곳곳에 계단이 가설된 모습에서 첫눈에도 난코스라는 것이 바로 드러난다. 천황봉에서 산성대 주차장까지는 3.9km에 불과하여 1024분에 천황봉을 하산할 때만 하더라도 12시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런데 막상 하산을 하고 보니 천황봉에서 내려다보이기만 하던 산길의 곳곳은 가파른 계단이 가설된 암릉 꼭데기를 통과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도대체 하산길인지 등산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해발고도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암릉 꼭대기로 이어진 계단에서 조망하는 사방의 풍경은 압권이어서 쥐가 계속 나는 다리를 쉴 겸 산성대 능선의 비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하산길의 고통에 대한 보상이었다. 산성대 능선길은 비유하자면, 관악산 정상에서 팔봉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계단을 가설하여 무너미까지 이어지는 길을 길고 더욱 가파르게 확대한 형상이라고 보면 무난할 것 같다

 

  이제 능선길에는 정오 무렵의 직사광선이 머리와 배낭 위로 내리쬐기 시작하였다. 영상 28도 정도로 기온이 높아져서 더위와 함께 갈증이 자주 났다. 가끔 숲길이 나타났지만 대체로 그늘이 없는 뙤약볕 능선이 이어져서 휴식할 수 있는 나무 그늘조차 찾기 어려웠다. 암릉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던 중 그 어느 순간에 주능선을 벗어나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급경사로로 들어섰다.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고통 한가지는 덜었다. 월출산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경사가 급한 산으로 저 혼자 평야지대에 우뚝 솟아 있어서 강원도의 첩첩산중처럼 수량이 풍부한 계곡은 품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천황사 계곡이나 경포대 계곡에도 물은 그다지 풍부한 편이 아니고, 오늘 하루 종일 도갑사에서 산성대 주차장에 이르도록 물이 흐르는 계곡을 만나지 못하였다. 다행히 배낭이 무거울 정도로 물은 넉넉히 준비하였기 때문에 갈증으로 고생을 하지는 않았다.

 

  하산한 지 2시간 30분만인 오후 1시 정각에 산성대 주차장에 도착하여 뒤를 돌아보니 천황봉은 처음보던 모습 그대로 의연히 솟아 있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세상에서 나만 부질없이 종일 허덕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등산은 스스로 선택한 시지푸스의 바위 나르기와 같다는 점에서 자유의지가 원형 그대로 발현되는 행위라고 받아들인다면, 다음에도 같은 고생을 기꺼이 되풀이하게 된다. 더욱이 지나온 월출산의 먼 음영을 바라보면서 동문 후배가 격려와 함께 건네준 시원한 맥주를 단숨에 들이키고 나니 성취감과 원상회복이 주는 안도감은 힘든 산행을 할수록 깊어진다는 이치를 깨닫는다.

 

-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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