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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우회 게시판

221028-설악산 공룡능선(특별산행 19)

페이지 정보

김시영 작성일23-01-01 19:31 조회315회 댓글0건

본문

221028~29-설악산 공룡능선

 

[일정]

-1028-

1455   동서울 터미널 출발

1612   홍천휴게소

1738   속초

1850   저녁식사(생선구이)

1914   청초호 거룻배

1940   모텔투숙

-1029-

0400   기상

0430   식사(콩나물국밥), 도시락 준비

0522   설악동 탐방지원센타

0617   비선대 입산통제소(해발 200m)

0648   금강굴 갈림길

0712   비선대 800m 지점 능선

0715   일출

0811   비선대 1.8km 지점

0831   비선대 2.5 km 지점

0908   대청봉 조망소

0912   비선대 3km 지점

0941   마등령 삼거리(1,220m, 비선대 3.5km 지점)

0950   삼거리 출발

1023   나한봉(1,298m) 아래

1051   큰새봉 아래 통과(비선대 4.7km 지점)

1120   큰새봉 뒷쪽

1157   1275(비선대 5.6km 지점) 도착, 점심

1235   1275봉 출발

1347   비선대 7.1km 지점(마등령 삼거리 3.6km)

1414   신선대

1450   무너미(마등령 삼거리 4.9.km)

1555   양폭

1743   비선대 입산통제소

1832   설악동 국립공원 입구

 

[활동]

13시간 10/소공원~비선대 2.9km; 비선대~마등령 삼거리 3.5km; 마등령 삼거리~무너미 갈림길 4.9km; 무너미~설악동 주차장 5.5km; 합계 16.8km

 

[참가자]

김시영, 김용수, 송경헌, 우갑상, 이종현

 

[낙수]

 

1. 대한민국 국립공원 중 제1경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설악산의 공룡능선은 천불동계곡과 함께 설악산을 대표하는 진경이라는 의미에서 진설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설악산의 내노라하는 나머지 봉우리나 계곡으로서는 서운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1경이라든가 진설악이라는 표현은 공룡능선의 위상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용어로 전혀 과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공룡능선을 처음 넘은 때는 19988월이었다. 등산을 시작한 지 1년 남짓한 시점에 김진호, 박중배, 송경헌, 오성학, 최택상 등 5명의 친구들과 함께 모 산악회를 따라 무박산행으로 간 것이다. 새벽 2시경에 용대리를 출발하여 백담사에 이르는 구불구불 포장도로를 지루하게 걸은 후에야 본격적인 내설악 등산로에 들어섰다. 캄캄한 산길에서 행여나 길을 잃을새라 랜턴의 불빛에 의지하여 일행의 맨 뒤꽁무니에 붙어서 허겁지겁 쫓아가는 사이에 영시암을 지나고 오세암에 도착하니 새벽 6시가 넘었다. 어둑어둑한 새벽녘에 장대한 암봉들이 엷은 새벽 안개 속에서 앞을 가로막은 채 늘어선 내설악의 광경에 외경심과 압도감을 동시에 느꼈던 기억이 아직까지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특기할 것은 1995년 초에 고향 친구의 소개로 렌즈 교환식 필름 카메라인 Nikon F801을 구입하여 사진 촬영에 입문하였다는 것이다. 그 후 여행을 가면 여러 통의 필름과 함께 5kg 가까이 되는 카메라 본체와 렌즈, 후래쉬, 청소도구 등 보조장비까지 따로 카메라 가방에 넣어 다니게 되었는데, 1997년부터 시작한 등산 시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제는 남보다 물을 많이 마시는 나로서는 5~6시간 등산을 할 경우 2리터 이상의 물을 마셔야 하는 것 외에도 5kg가량 되는 카메라 장비까지 더하여 남보다 최소한 6kg 정도는 더 무거운 배낭을 지고 다녀야 한다는 데 있었다. 토탈 10kg이 넘는 배낭을 지고 일행의 맨 뒤에 처져서 힘들게 따라오는 내 모습을 본 산악회의 가이드는 대뜸 등산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셨죠?”라고 말을 붙였다. 공룡능선을 가겠다고 따라온 나의 배낭의 크기나 걷는 모습을 보고 내가 등산 초짜임을 바로 알아본 것이다. 요즈음은 공룡능선 중 경사가 가파르거나 위험한 구간에는 나무 계단이나 로프 등이 잘 설치되어 있고 너덜지대도 전부 돌계단 형태로 정비되어 있지만, 1997년도만 하더라도 공룡능선은 거의 정비되지 않은 상태여서 험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날 설악동 소공원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아마도 오후 4~5시쯤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난생 처음으로 14시간 이상을 끌려가다시피 한 끝에 난이도가 최상급인 공룡능선을 넘은 것이다. 햇비둘기가 준령을 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얼떨결에 넘어버렸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 후 20031010일에는 동기 산우회원 23명이 공룡능선을 등산하기 위하여 밤에 서울을 출발하여 속초로 이동하였다. 일행 중 16명은 11일 새벽 4시에 설악동에서 시작하여 공룡능선을 산행할 수 있는 가장 짧은 루트인 비선대~마등령~공룡능선~무너미~천불동계곡 코스로 산행하였다. 당시 선두조가 다시 비선대로 회귀한 시간은 오후 513분이었고, 와선대 식당에서 휴식하면서 후미조를 기다린 끝에 저녁 715분에 함께 설악동에 도착하였다(고 이규도 학형의 산행일지). 그 때는 50이 갓 넘은 팔팔한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선두조를 기준으로 14시간 이상 소요된 것이다. 여러 명이 움직이다 보니 아무래도 휴식시간이 길어진 것도 산행시간이 지체된 원인의 하나였다. 당시 나는 한동안 사용하던 Nikon사의 디지털 카메라인 COOLPIX 990 대신에 SONY사의 디카 제품인 Cyber-shot 5 mega pixel 카메라를 새로 구입하여 사용하던 중이었다. 이런 초창기 디카들은 무게가 1kg이 채 되지 않아서 소지하는 것 자체가 다소 번거롭기는 해도 산행에 크게 지장을 줄 만한 무게는 아니었다.

  공룡능선을 세 번째로 등산한 것은 200995일이다. 전날 밤 10시경에 양재동 서초주민센타 옆 공터(현재 가정법원과 행정법원 자리이다)의 주차장에서 모 산악회가 주관하는 설악산 무박산행에 송경헌 학형과 함께 참가한 것이다. 새벽 215분에 한계령을 출발하여 서북능선~중청봉~희운각~무너미~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145분 도착)에서 40분 휴식~설악동(1535)까지 13시간 20분간 기념비적인 극한의 등산을 하였다. 4개월 전인 2009523일에는 처음으로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의 지리산 당일종주를 15시간에 주파하였고, 925일에는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무박 오산종주(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에 도전하였으니, 2009년은 1997년에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는 내 등산 역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해였다.

 

2. 백두대간을 다녀본 등산인들은 잘 알겠지만 설악산의 한계령~서북능선~공룡능선~마등령 구간은 백두대간 중에서도 백미의 구간이다. 내 능력의 통상적인 한계를 초월하는 이런 구간을 완등한다는 것은 혼자 힘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나보다 뛰어난 산행 능력을 가지면서 뒤처지는 나를 격려하고 기다려주는 동행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취미생활 중에서 등산처럼 힘들고 어려운 운동을 의기투합하여 같이 하는 일행들 사이에는 깊은 믿음이 생겨나서 동료의식이 강화되는 것을 느낀다. 그 의식은 존재감의 확장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것으로, 즐거운 일을 같이 했을 때보다 훨씬 강하다. 설악산의 난이도 높은 준령들을 등산하면서 동기 산우회의 친구들과 고생과 즐거움을 같이 느끼는 사이에 상호간의 신뢰가 두텁게 쌓여갔다. 서북~공룡능선 산행시에 지참한 카메라는 본격적인 컴팩트 카메라라고 할 수 있는 CANON사의 IXUS 800 IS 모델이었다.

  2011930일 밤에 송경헌, 오성학, 이종현, 최택상 학형들과 함께 무박산행으로 서북~공룡능선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중청봉에 이르러서 체력에 한계가 느껴서 공룡능선으로 가는 것을 포기한 채, 일행과 헤어져서 혼자 대청봉까지 올라갔다가 희운각으로 내려와서 바로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한 다음 설악동에서 일행과 합류한 경험이 있다. 2016년 이후부터는 15시간이 소요되는 지리산 당일종주도 더 이상 힘에 부친다는 것을 깨닫고 불참하기 시작하였다.

 

3. 2022년은 내 나이가 70세가 되는 해이자 2020년에 실행되었어야 했던 고교 졸업 50주년 기념 산행이 무한폐렴의 대유행으로 2년간 연기된 끝에 드디어 실행하기로 한 해이다. 개인적으로 2007년 이후부터 골프는 멀리하는 대신에 등산에 힘을 쏟아왔고 특히 무한폐렴이 창궐하기 시작한 2020년 이후에는 난이도가 높고 산행시간이 6시간 이상되는 등산을 극무산행으로 명명하여 몇몇 친구들과 다니기 시작하였다. 극무(克武)2020년초부터 창궐한 무한(武漢)폐렴을 극복한다는 의미와 함께 오랫동안 사대주의라는 이념으로 정치적, 사상적으로 중국에 종속되었던 역사적 컴플렉스를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도 담겨있다. 극무산행을 같이 하고 있는 김용수, 송경헌, 우갑상, 이종현 등 4명의 친구들간에서 고교 졸업 50주년을 기념한다는 의미와 함께 70이 넘은 나이에 공룡능선을 넘어보자는데 대해서 어렵지 않게 의기투합하였다. 2011년에 공룡능선을 넘지 못하고 천불동으로 바로 하산한 실패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11년만에 공룡능선에 재도전한다는 의지와 함께, 여생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공룡능선의 등산이기에 비장감마저 느껴졌다. 지금 내가 걸을 수 있는 산길이란 결국 내가 살면서 걸어온 모든 발걸음의 총화로서 등산에 관한 나의 성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왕년에는 어느 산까지 올라갔느냐가 아니라, 지금의 내가 오를 수 있는 산이 어디까지인가가 중요하다. 나는 그러한 인식이 단지 어려운 등산을 감당할 수 있는 현재의 육체적인 능력의 검증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1997년 이래 25년간 등산을 하면서 얻은 정신적인 성취의 깊이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비선대 입산통제소를 지나면 바로 우측으로 백담사, 오세암, 마등령, 금강굴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이정표가 서 있다. 마등령 산행의 들머리인 이곳에서 공룡능선이 시작되는 마등령 삼거리까지 거리는 3.5km이다. 비선대의 해발고도는 약 200m이고 마등령 삼거리의 그것은 1,220m이므로 1,020m를 곧바로 치고 올라가는 이 등산로의 평균 경사도는 무려 48.5도에 이른다. 설악산의 등산로 중에서 경사도의 면에서 가장 가파른 된비알(비탈)이다. 공룡능선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나한봉이 1,298m이므로, 마등령 삼거리까지만 올라가면 그 후부터의 공룡능선 등산로는 그 정도의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간밤에 9시 반 경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1150분경에 일행의 코고는 소리에 잠이 깬 후 새벽 4시에 기상할 때까지 지속된 코고는 소리에 잠을 자지 못했다는 데서 발생하였다. 비선대까지는 길이 평탄하여 그런대로 뒤처지지 않고 쫓아왔지만 마등령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산길로 들어서니 계속해서 10분을 걷기가 어려울 정도로 등산 초반부터 기진맥진하고 말았다. 숙면하지 못한 결과, 무박산행과 다를 바 없는 신체 컨디션으로 되고 만 것이다. 등산 초기에 바로 지친데다가 입 속이 자주 바짝 말라서 1.5리터 들이 물병을 연신 꺼내어 물을 마셨다. 등산 초반부터 물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은 바로 체력 저하로 연결되므로 금기사항 중의 하나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등산을 시작한 지 3시간이 채 되지 않았고 새벽 등산에 땀을 많이 흘리지 않았는데도 0.5리터 이상의 물을 마셨다. 자꾸 뒤처지는 나를 배려하여 송경헌 학형이 1리터 남은 내 물병을 자신의 배낭으로 옮겨 넣어 내 배낭 무게를 줄여 주었다. 1시간을 허덕허덕 올라가니 비로소 천불동계곡을 벗어나서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올라설 수 있었다. 때마침 건너편 화채능선의 한 봉우리 위로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일기예보상으로는 설악산 지역에 오전 10시 전후로 비를 약간 뿌리고 오후 2시 이후부터 약간의 비가 내린다고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날씨가 개어 일출까지 볼 수 있었으나 문제는 고갈된 체력이었다. 능선에 올라섰다고는 하지만 여태껏 해발 7~800m 언저리여서 여전히 가파른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야 마등령 삼거리다. 너무 자주 쉬는 나를 기다리는 바람에 앞에서 잘 나아가는 일행들의 산행 속도가 조금씩 지체되고 있었다. 마등령 삼거리 아래 약 500m 지점에는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공룡능선과 대청봉 및 중청봉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뷰 포인트가 있다. 일행과 5분 이상 뒤처졌음에도 불구하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느라고 기진맥진한 몸을 쉴 겸 그곳으로 가서 사진을 찍으면서 숨을 돌렸다. 저 멀리 구름에 조금 가려진 대청봉과 중청봉의 검푸른 음영을 배경으로 신선대, 1275, 큰새봉 등 공룡능선의 대표적인 봉우리의 날카로운 웅자가 환상처럼 펼쳐져 있었다. 소청봉 대피소에서 몇 차례 원경으로만 내려다 보던 공룡능선의 진면목을 13년 만에 가까이에서 제대로 마주한 것이다. 공룡능선은 금강산의 상팔담이나 천선대와 견주어 보더라도 결코 뒤지지 않는 빼어난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말기에 이르도록 설악산은 산의 이름과 신흥사, 백담사, 영시암, 오세암, 봉정암 등 5개의 사찰 이름만 기록에 나타날 뿐, 금강산처럼 예전부터 이름이 붙은 봉우리나 폭포 등은 전무하다. 대청봉은 말할 것도 없고 신흥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비선대라는 이름조차 조선시대의 어떤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사찰의 숫자에 있어서도 설악산은 금강산과는 비교가 안 된다. 우리나라의 명산에는 예외 없이 적지 아니한 사찰이 삼국시대 이래로 창건되고 있었지만 유독 설악산에는 위에서 본 5개의 사찰 외에는 사찰이 없다. 설악산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한 문서가 없고 사찰조차 드문 이유는 금강산과는 달리 설악산은 근세에 이르기까지 접근하기가 너무 어려운 산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일행보다 5분 이상 뒤처져서 비선대 입구를 출발한 지 3시간 24분만에 기진맥진한 채 마등령 삼거리에 도착하자, 오세암 쪽으로 하산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나의 의지를 새삼 점검하는 차원에 불과하고 공룡능선을 완주하는 것은 거의 본능이 요구하는 바로서 선택의 여지란 있을 수 없다. 나를 기다리던 일행은 인증 촬영을 한 다음 먼저 출발하고 나는 10분간 더 휴식한 후에 뒤늦게 마등령 삼거리를 출발하여 드디어 공룡능선 구간으로 들어섰다. 공룡능선의 첫 번째 난코스인 나한봉으로 올라가는 산길이다. 막상 13년 만에 공룡능선길로 들어서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나한봉은 공룡능선에 있는 여러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기 때문에 마등령 삼거리에서 나한봉으로 가는 구간 역시 만만치 않은 오르막이다. 마등령 인근에서는 등산로의 좌측 능선 아래쪽으로 우뚝 솟은 세존봉을 잘 볼 수 있으나 오늘은 구름이 점점 많이 몰려오고 있어서 세존봉조차 이미 보이지 않았다. 북한산의 의상능선에도 있는 나한봉의 나한(羅漢)이란 팔리어 아라한트(arahant)의 음역인 아라한을 줄인 말이다. 이 단어는 마땅히 공양을 받을 자격을 가진 수행자라는 의미로서 응수공양(應受供養), 줄여서 응공(應供)이라고 하는데, 성불의 단계에 가장 근접한 수행자를 칭하는 용어이다. 취미로 등산을 하는 사람으로서 공룡능선의 나한봉까지 도달한 수준이라면 마땅히 공경받을 만하다.

  나한봉에서는 진행 방향 쪽 저 멀리 큰새봉의 웅장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풍경이어서 설명을 듣고 나서 다시 보면 세 개의 봉우리가 이루고 있는 형상이 마치 거대한 새 한 마리가 하늘로 치솟고 있는 듯한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미적 감각이란 이와같이 대상을 보면서 대상 이상의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으로, 관찰력과 함께 학습을 통해서 키울 수 있다고 본다.

나한봉에서 큰새봉의 뒤쪽을 통과하여 1275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도처에 쇠난간 혹은 밧줄이 설치되어 있거나 바위투성이의 계단길이어서 공룡능선에서 가장 험한 길이다. 십수 년 전에 비하면 많이 정비되었다고는 하지만 공룡능선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구간이다. 그러나 구름이 점점 짙게 몰려오고 있어서 경관이 가장 빼어난 이 구간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실망스럽게도 구름뿐이었다. 구름 너머로 어렴풋한 모습만 보이는 절경의 가려진 부분을 상상으로 보충하면서 힘겹게 오르내린 끝에 앞서간 일행이 이미 도착하여 식사를 하고 있는 1275봉에 뒤늦게 도착하였다. 새벽에 식사를 한 식당에서 준비해 간 도시락을 꺼내어 식은 밥을 입에 떠 넣었다. 입맛을 완전히 잃었으나 앞으로 6시간 이상 더 걸어야 설악동에 도착할 수 있으므로 밥을 안 먹는 것은 앞으로 고생을 더욱 자초하는 짓이다. 20184월 안나푸르나 서킷 트레킹 때 해발 4,925m의 하이캠프에 도착한 날의 저녁을 떠올렸다. 당시 고산증세로 정신까지 혼미한 중에서도 혼잡한 식당 한구석에서 스파게티로 저녁을 먹던 악몽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가. 그때와 비교하면 1275봉 기슭에 친구들과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 지금은 천국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40분간 식사와 휴식을 취하고 나서 135분경에 일어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일행보다 뒤처지기 시작하였다. 등산로 왼쪽의 벼랑 아래쪽으로 천화대의 수려한 경관은 구름 속에 거의 가려져 있었고 앞서가는 일행 역시 어느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식사 후에 기운을 어느 정도 차렸고, 앞으로 신선대까지만 한 번 더 치고 올라가면 나머지는 하행길이라는 사실이다. 쇠잔하던 육신에 약간의 에너지가 공급되고 마음에는 안도감이 일어나니 주변의 경치도 다시 보이기 시작하였다. 몽롱한 안개를 배경으로 기암들이 눈앞에서 줄을 이은 풍광은 이래봬도 여기가 공룡능선이요라면서 이름값을 주장하는 듯하였다. 멍하고 가물거리던 의식 역시 깨어나는 것 같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깊은 고산 속에 고립된 채 암봉 사이로 연결된 거친 산길을 걸어보면 지금 이 산길을 가는 이 몸은 무엇인고(是甚麽)”라는 의문이 절로 떠오른다. 높고 깊은 산길을 힘겹게 따라가는 것은 말 그대로 도()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고독한 길을 걸으면 바깥으로 향하던 육근(六根)이 방향을 바꾸어 내면으로 되돌아옴으로써 존재를 새삼 성찰하게 된다. 수행자들은 이를 행선(行禪)이라고 하던가.

  나한이 고행을 거듭하여 큰새를 타고 1275봉을 오른 후에 비로소 신선의 경지에 이르니, 바로 신선대에 도착한 것이다. 쾌청한 날 신선대에 올라서면, 그동안 미몽 속에 고해를 헤매다가 어느 순간에 대오한 것처럼, 공룡능선 전체의 절경이 마치 거울처럼 잔잔한 바다 위에 삼라만상이 도장 찍히듯이(海印) 한꺼번에 드러난다. 불행하게도 이날의 신선대에서는 사방이 짙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아직 수양이 부족하니 공룡능선을 다시 찾아오라는 제석천의 계시인가 아니면 미련이 가져온 마음의 조화인가? 어느 쪽이든 간에 안개 속에 갇힌 신선대의 실망스러운 풍경으로 말미암아 공룡능선을 한 번 더 찾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를 일행에게 안겨주었다.

  신선대에서 무너미고개는 그야말로 지척지간이다. 공룡능선의 험한 오르내림이 끝나는 지점인 무너미고개는 천불동계곡과 가야동계곡을 가르는 고갯마루로서 공룡능선이 소청봉,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내외설악의 삼거리 교통요지이다.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에서 안양유원지와 신림동의 관악천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 이름 역시 무너미고개이다. 이로 미루어보면 산의 능선 중에서 양 방향으로 형성된 계곡의 중간 지점을 일반적으로 무너미라고 이름 붙이는 것으로 짐작된다.

  무너미고개 위로 떨어진 빗방울은 풍향과 풍속에 따라 (혹은 제 팔자에 따라) 가야동계곡의 물이 되거나 천불동계곡의 물이 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불가에서는 수많은 강과 계곡물이라도 큰 바다로 돌아가면 그 물맛은 한 가지(百千江河萬溪流 同歸大海一味水)”라는 깨달음을 추구한다. 이에 반해서 서양의 과학은 대상을 분석하고 각 사물에 내재한 본질적 차이를 규명하고자 노력한다. 육조 혜능은 수행자들이 바람이 부는지 깃발이 흔들리는지 라는 문제를 두고 다투는 것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이와는 반대로 아이작 뉴튼은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뉴튼이 만약에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지 아니면 땅이 사과로 떨어지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 끝에 혜능처럼 내 마음이 떨어지는 것이다라고 깨달았다면, 만유인력의 법칙을 절대로 발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혜능과 뉴튼의 이와 같은 사고방식의 차이가 아편전쟁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추측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단풍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시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천불동계곡은 여전히 수려하다. 금강산의 상팔담계곡이나 중국 황산의 절경과 견주어 보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다. 자연의 절경이란 그 자체로서 완결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한 장소의 아름다움을 다른 곳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는 하다. 최근의 잦은 비로 수량이 풍부한 천당폭포는 계곡 가득 웅장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천당폭포까지 내려가는 경사가 심한 계곡 길을 지나고 나면 계곡의 나머지 급경사 구간은 곳곳에 철계단이 길게 가설되어 있어서 하산길은 십 수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안전하게 개수되었다.

  오후 4시경에 양폭을 지나면서 기어이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이종현 학형은 일 년 전에 다친 발가락이 장시간의 등산으로 무리가 갔는지 걷는데 대단히 고통을 느끼는 듯하였다주저앉기 직전까지 지친 채 혼자 후미에서 걷던 나로서는 길동무가 생긴 셈이었다비를 맞으며 마지막 오르막인 귀면암계단을 힘겹계 올라갔다어두워 오는 계곡을 한 구비 돌아가니 장군봉적벽무명봉 등 3봉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비선대가 가까워 온 것이다랜턴을 켠 채 천신만고 끝에 오후 5시 43분에 비선대 입산통제소로 생환하였다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던 일행과 함께 이미 어둠이 깔린 설악동 소공원길을 50분간 더 걸어 내려와서야 비로소 설악동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13시간 10분이 소요된 대장정이었다내년이면 다시 오랴마는!

 

-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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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3 2월29일현재 년회비, 시산제찬조 수입및 회비집행 보고 첨부파일 손훈재 2024-02-29 102
1032 2024년 3월 324차 정기산행 공고 윤현로 2024-02-28 85
1031 제323차 정기산행 및 시산제 공고 첨부파일 윤현로 2024-02-01 137
1030 2024년 1월 정기산행 첨부파일 손훈재 2024-01-29 114
1029 2023 산우회 감사결과 보고 지용붕 2024-01-13 100
1028 2024 년 총산 시산제(1월 14일) 윤현로 2024-01-10 107
1027 2023 12월 회비 정산 김용수 2023-12-31 91
1026 2023년 12월 321차 정기산행 공고 송경헌 2023-12-10 117
1025 2023 11월 회비 정산 김용수 2023-11-29 162
1024 2023년 총산 송년산행 안내 송경헌 2023-11-28 128
1023 2023년 11월 320차 정기산행 공고 송경헌 2023-11-05 124
1022 2023 10월 회비정산 김용수 2023-10-30 127
1021 2023년 10월 319차 정기산행 공고 송경헌 2023-10-05 168
1020 2023 9월 회비 정산 김용수 2023-09-30 223
1019 제목: 2023년 9월 318차 정기산행 공고 송경헌 2023-09-10 153
1018 2023 08월 회비 정산 김용수 2023-09-02 143
1017 2023년 8월 317차 정기산행 공고 송경헌 2023-08-04 155
1016 2023 07월 회비 정산 김용수 2023-07-30 166
1015 2023년 7월 316차 정기산행 공고 송경헌 2023-07-10 160
1014 2023 6월 회비 정산 김용수 2023-07-02 152
1013 2023년 6월 315차 정기산행 공고 송경헌 2023-06-03 171
1012 2023 5월 회비 정산 김용수 2023-05-31 155
1011 230429-북한산12성문(특별산행 25) 관련링크 댓글(1) 김시영 2023-05-02 243
1010 2023 4월 회비 정산 김용수 2023-04-29 152
1009 230422-청계산 갱매폭포(제313차 정기산행) 관련링크 김시영 2023-04-24 318
1008 2023년 5월 314차 정기산행 공고 송경헌 2023-04-16 210
1007 2023년 4월 313차 정기산행 공고 송경헌 2023-04-03 171
1006 2023 3월 회비 정산 김용수 2023-03-31 159
1005 230325-관악산 선유천 깃대봉(제312차 정기산행) 관련링크 김시영 2023-03-26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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